내가 좋아하는 내 동시

옷도둑

방장산두류산 2019. 10. 8. 08:35

그 여름

덕천강 깊은 물에서 놀던

간 큰 아이들의 신발은

가끔 잔물결이 실어가고

 

때 묻고 헤진 아이들 옷은

종종 왕할머니가 훔쳐가셨다

 

알몸이 된 아이들은

꽃뱀이 숨어있는 뱀딸기 밭을 지나

층층층 구름이 걸터앉은 돌계단을 올라

강 언덕 왕할매 집 마당 한가운데

한참동안 벌을 서야했다

 

옷을 여러 번 도둑맞은 아이는

돌려받지도 못한 채

맨몸으로 자기 집으로 돌아갔지만

이상하게도 마을어른들은 모른 척 했다

 

그 여름 내내

어린 나무꾼들의 옷을 훔치며

아이들의 꿈을 지켜주셨던 왕

할머니

 

 

 

'내가 좋아하는 내 동시' 카테고리의 다른 글

강물 위에 쓰는 편지  (0) 2019.10.08
꿈꾸는 섬  (0) 2019.10.08
바위  (0) 2019.10.08
물수제비  (0) 2019.10.08
소나무 무덤  (0) 2019.10.08