詩골

숲에서 길을 잃었다

방장산두류산 2019. 10. 2. 21:02

숲을 지날 때 바람이 내 발자국 소리를 따라 밟았다
겁에 질려 이불호청처럼 나자빠지는 발자국 위로
시간의 톱밥이 쏟아지고
젖은 톱밥을 바람이 핥고 있었다
나는 쉬지 않고 코 앞의 무덤을 파면서
바람이 발 소리를 지우는 걸 뒤돌아 보았다
숨을 쉴 때마다 싹 튼 시간들이
기억에 아파 아려오는 지난 날들을
제 자리로 물리며 옛날로 돌아가고 있었다
두려움에 짓눌려 사는 긴 시간들의 사슬에 끌려
나는 늘어진 그림자를 벼랑에 걸어놓고
지쳐 쓰러져 누웠다
바람이 쓰러진 나를 밟고 지나갔다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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