詩골

내 몸 안의 조선낫

방장산두류산 2019. 10. 4. 18:04

내 왼손등 위에는


어릴 적 나무 하러 갔다가 낫에 찍힌 흉터가 있다.




옛적 양민들이 죽창 들고 일어섰던


동학의 옛터 덕산장터에서


아버지가 사 오신 날이 잘 선 조선낫으로 나는


물거리 대신 내 손등을 내려찍었었다.




삼십여 년을 몸 안에 갇혀 지낸 낫이


날을 벼리는지


요즘 들어 낫 모양의 흉터가 부쩍 가렵다.




어둔 역사의 무덤을 뚫고


새 살이 차오르기라도 하는지


나무하던 조선낫, 쇠꼴 베던 녹슨 낫의 추억이


한적한 마음 언저리에 닿아 스멀거린다.




하지만 내 할 일은 고작


숨죽여 흉터를 지켜보는 일


몸 안에 옛 조선을 담고 사는 것만으로도 족하니




마음 다잡아 기꺼이 조선낫의 집이 되리라


더 이상 내가 녹슬지 않게


'詩골' 카테고리의 다른 글

정자나무 콩나물집  (0) 2019.10.04
옛 절터를 찾아서  (0) 2019.10.04
망각의 江에 핀 장미  (0) 2019.10.04
月河日記  (0) 2019.10.04
가야의 江  (0) 2019.10.04