동틀 녘 하늘이 저녁놀처럼 붉은 날
팔순의 치매 든 큰고모님 댁에 들렀더니
절간 같은 집 뒤란 요강에
월경(月經)의 그늘처럼 검붉은 장미 한 송이 꽂혀있다
삶도 잊고 죽음도 잊고 몸도 영혼도 잃어버린 채
홀로 해탈의 길에 들어선 큰고모님
두고 온 어제를 수확하러 가셨는지
여생의 씨앗을 파종하러 가셨는지
오늘도 이른 아침부터 밭에 나가신 큰고모님이
스테인리스 요강에 꽂아둔 저
*염화미소(拈華微笑)
로망과 노망(老妄) 사이에 활활 타오르는
저 절묘한 장미화병 속으로
나는 길마중을 간다
망각의 강을 되 건너오시는 고모님을 뵈러
*염화미소 : 말로 통하지 아니하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 일. 석가모니가 영산회(靈山會)에서 연꽃 한 송이를 대중에게 보이자 마하가섭만이 그 뜻을 깨닫고 미소 지으므로 그에게 불교의 진리를 주었다고 하는데서 유래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