詩골

망각의 江에 핀 장미

방장산두류산 2019. 10. 4. 18:03

동틀 녘 하늘이 저녁놀처럼 붉은 날


팔순의 치매 든 큰고모님 댁에 들렀더니


절간 같은 집 뒤란 요강에


월경(月經)의 그늘처럼 검붉은 장미 한 송이 꽂혀있다




삶도 잊고 죽음도 잊고 몸도 영혼도 잃어버린 채


홀로 해탈의 길에 들어선 큰고모님




두고 온 어제를 수확하러 가셨는지


여생의 씨앗을 파종하러 가셨는지


오늘도 이른 아침부터 밭에 나가신 큰고모님이


스테인리스 요강에 꽂아둔 저


*염화미소(拈華微笑)




로망과 노망(老妄) 사이에 활활 타오르는


저 절묘한 장미화병 속으로


나는 길마중을 간다


망각의 강을 되 건너오시는 고모님을 뵈러








*염화미소 : 말로 통하지 아니하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 일. 석가모니가 영산회(靈山會)에서 연꽃 한 송이를 대중에게 보이자 마하가섭만이 그 뜻을 깨닫고 미소 지으므로 그에게 불교의 진리를 주었다고 하는데서 유래.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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