1
어둠만이 죽음을 지켜 슬퍼하는 계곡
끊어질 듯 이어지는 낮은 숨소리
산은 스스로 비명을 새겨나갔다
글귀가 살아날 때마다 산의 숨소리는 말라들고
천공을 뚫는 소리 없는 굉음
어디 귀 뚫린 것들만 들었겠는가
밤을 도와 부음은 땅끝까지 밀려 나갔다
부패한 산의 코와 귀 사이 쉬처럼 들끊는
사람들의 행렬 위로 염습하듯 눈이 내리고
그들이 부르는 장송가 산을 이뤄
그들의 눈 속에 조용히 덮히어져 갔다
2
그해 여름 비 억수로 쏟아졌다
지리산 계곡 간 부은 물살
산적떼처럼 내려와
소 돼지 닭 염소 닥치는 대로 잡아갔다
일렁 일렁 황톳물 마을 넘보고
아랫골 물 들어 환장한 고기떼
수박밭 뛰어오를 때
어머니 안절부절 몇번이나 장롱문 여닫으시고
귀 어두운 동생 마른 바닥에서 헤엄을 쳤던
비 억수로 쏟아진 그해 여름 내내 떠내린
징검다리 물든 자갈논으로 갈지자 걸음
3
마음담 사람들 지리산 발가락 사이에 숨어
산다
산짐승들과 눈 인사하며 사람들 피해 산다
으시시한 나무들과 다혈질의 짐승들 속에서
안식을 구하며 푸성귀만 먹고 산다
섬기는 건 하늘 뿐이어서 사람들 향해
마음의 담을 쌓고 사는 마음담 사람들
지리산 발톱에 때처럼 산다
4
물소리 살아 물을 돌보는 계곡
삐걱삐걱 돌들의 관절 소리에
귀 열어 놓고
물길 따라 내리고 있다
신발 벗어 귀에 대고 웅성웅성
물소리 담아 흘러 드는 마을 어귀
발소리 흩어 놓던 물소리도 자는데
퍼득퍼득 못퉁가리 산을 오른다
5
지리산이 웃통을 벗는
길 잃은 산, 길 잃은 길에 서면
녹음방초 우거진 골이라
물 치는 산죽 스윽 스윽 산길 지우고
몸 부은 잡것들 모여
세상 지울 일 끊다 뽑다 말다 이는
글 잃은 혀 말 잃은 입술들
침묵하는 소리 소리 덮인 산
산산이 부서져 산이 된 산
넌덜머리 나는 산 것들 위해
오늘도 길 열어 넋 잃고 앉은 산