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경남문학 특집원고-이 작가....

방장산두류산 2019. 10. 8. 18:58
<경남문학 봄호 특집 원고>


<약력>

1 매
* 류경일 (柳景日)

1964년 산청에서 태어나 경남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. 1991년 시 ‘겨울 남자
강’ 등 5편으로 계간 「우리문학」(여름호)의 추천을 받고, 2004년 동시 ‘땡감나무 일
기’로 <매일신문>신춘문예에 당선되었다.
2 매
시집으로 「빗방울 듣고 나는 말한다」(1999년, 시와시학사), 「흙비」(2002년 포엠토
피아) 등이 있고, 동시화집 「바퀴 달린 집」(2006년, 아이들판)을 펴내 한국문화예술위
원회의 우수작품으로 선정되고 경남문학 우수작품집상을 수상했다. 현재 창원시청 시보
편집실에서 일하고 있다.

3 매
*최근작 2편

허수아비
냇물과 아이

4 매

*대표작 8편

산은
바람
5 매
바퀴달린 집
땡감나무 일기
배추쌈
쇠무릎
촌놈 금붕어
6 매
칡넝쿨


*시작노트
*사진 따로 보내드림
7 매





8 매
허수아비


태풍 온다고
집 앞 고추밭에 서서
9 매
두 팔 벌려
바람을 막고 있는 허수아비
태풍 지나간 뒤
밭고랑에 엎드려
바람에 날아간
10 매
밀짚모자를 찾고 있다

몸 가벼운 허수아비
일으켜 세워주고
도랑 옆에 처박힌 모자도 찾아
11 매
씌워주었더니
흙 묻은 얼굴로
씨-익 웃는다
고맙다고 안아주겠다고
두 팔 활짝 벌린다.
12 매




냇물과 아이
13 매


지난여름 물장구치고 자맥질하던
냇가 웅덩이
지나가던 아이들 놀고 싶어서
14 매
몸이 근질근질

냇물도 첨벙 처엄벙 퐁당 포옹당
아이들 안아주고 업어주며
놀고 싶어서
15 매
얼음 밑에서 졸졸졸

이렇게 추운 날은
철없는 아이들
냇물 속에 들어 갈까봐
16 매
하늘은 냇물 위에
얼음 뚜껑을 덮어놓았다



17 매

<대표작 8편>



18 매
산은


성묘 가서
할아버지 산소 앞에 엎드려 절하고
19 매
사과 한입 얻어먹었다

산을 내려오다 목말라
조그만 샘물에 노루처럼 엎드려
물 한 모금 얻어마셨다
20 매

산은 자꾸 엎드려야
먹을 걸 준다
자꾸자꾸 껴안아줘야
사랑을 베푼다
21 매




바람
22 매


북촌초등학교 수업이 끝나면
철석이는 남쪽 하늘 밑
남촌 고모 집을 향해
23 매
터벅터벅 걸어갑니다

얹으면 얹을수록 가벼워지는
바람을 등에 지고
보리밭길 지나
24 매
강변 둑길을 냇물처럼 흘러갑니다

변덕꾸러기 그림자가
가시밭으로 손을 끌기도 하고
빨간 까치밥 열매가
25 매
곯은 배를 채우라고 꼬드기지만

그럴 때마다 바람이 곧장 가라고
슬며시 등을 떠밀어줍니다

26 매
지난봄 큰 불로
철석이가 부모님을 잃은 뒤부터
바람은
철석이를 동생처럼 데리고 다닙니다

27 매



바퀴 달린 집

28 매

산언덕 이모집 지붕
사촌형 썩은 이도 받아주고
민들레 씨앗도 받아 키우는
꿈 많은 그 지붕은
29 매
힘 센 바람만 불면
휙 날아가
돌배나무 옆에 눕기도 하고
이웃집 담벼락에 기대기도 한다

30 매
며칠 전 이모부는
지붕 위에
차바퀴를 빙 둘러 얹었다
꿈 많은 지붕을 위해
바퀴를 달아주었다
31 매





32 매
땡감나무 일기

1

아침에는
33 매
강아지가 내 다리에 오줌을 누다가
감잎 떨어지는 소리에 놀라 도망가고

점심때는
할머니가 음식찌꺼기를 들고 와
34 매
발밑에 파묻고 홍시 하나 주워갔다

내 키가 쑥쑥 자라는 것도
품안의 까치집이 한 층 더 높아져
매운 굴뚝 연기를 피할 수 있었던 것도
35 매

정다운 이웃들이 있기 때문이다


2
36 매

교회 종이 울릴 때
어미까치가 팽나무 막대기를 물고 왔다
말썽꾸러기 어린 까치도 다 자라 떠났는데
회초리로 무얼 하나 보았더니
37 매
비가 새는 지붕을 수리하고 있었다

까치가 다시 막대기를 구하러 간 사이
백혈병을 앓는 영호의 아버지가
내 몸에 기대 한참 울다가 갔다
38 매

비가 새는 까치집 걱정
영호 걱정하다가
그만 하루가 다 지나버렸다

39 매

3

어젯밤 퇴원한 영호는
하얀 털모자를 쓰고 집으로 왔다
40 매

나는 달도 없는 캄캄한 밤하늘을 향해
백혈병을 빨리 낫게 해달라고 기도했다

밤새 바람이 세차게 불어
41 매
몇 잎 안 남은 내 머리카락도
영호처럼 다 빠졌다

고맙게도 아침 하늘이
함박눈으로 만든 하얀 털모자를
42 매
내 까까머리에 씌워주었다




43 매

배추 쌈


집 앞 남새밭에서 기른 배추가
44 매
점심상에 올랐습니다

농약 한 방울 뿌리지 않아
벌레 구멍이 숭숭 뚫려있습니다

45 매
배추벌레 한 마리
꿈틀꿈틀 기어 나왔지만
아빠는 배추쌈을 맛있게 드십니다

ꡒ과일이든 채소든
46 매
벌레 먹은 것이 맛나고 몸에도 좋지ꡓ

아빠 말씀에 용기를 내어
나도 배추쌈을 먹어봅니다

47 매
벌레 구멍 새로
삐죽 얼굴을 내미는 콩장도 보이고
밥상 위에 통통 튀는 밥알도 있지만
얼른 입 안에 넣습니다

48 매
ꡒ벌레 먹은 것 먹고살면 건강 걱정 없단다.
우리가 살 길은 벌레랑 같이 사는 거야…ꡓ

아빠는 작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 말씀을
양념으로 넣어가면서
49 매
배추쌈을 제일 많이 드십니다




50 매
쇠무릎


온몸에 무릎을 줄줄 달고 있는
쇠무릎들이
51 매
서촌 할머니 집 앞 도랑 가에
듬성듬성 앉아있습니다

관절염을 앓는 할머니께서
약으로 쓰려고 뿌리 채 뽑아도
52 매
하얀 웃음 지으며 할머니를 위해
기꺼이 무릎을 내어줍니다

어른 쇠무릎들이 떠나갔지만
어린 쇠무릎들의 얼굴은
53 매
그늘 없이 밝아서
매일 아침
ꡒ할머니, 무릎은 좀 어떠세요?ꡓ
안부를 묻습니다

54 매
할머니는 어린 쇠무릎들에게
미안한 마음이 들어
모른 척 고개 숙이고 지나시다가
등이 굽고 맙니다

55 매
서촌 할머니 뒷산 언덕에
잠드신 지도 벌써 삼 년
올해는 무덤가에 쇠무릎이 자라
바람 불 때마다 흔들흔들
할머니 다리 주물러 드리고 있습니다
56 매





57 매
촌놈 금붕어


큰누나 집 돌 절구통에서
15년째 살고 있는
58 매
눈이 툭 튀어나오고
꼬리지느러미가 길 다란
촌놈 금붕어 한 마리

얼마 전
59 매
새로 사온 붕어들과 함께
큰 유리 항아리로 옮겼더니
다른 붕어들은 좋아서 야단인데

그 촌스러운 금붕어만
60 매
와당탕퉁탕 뛰쳐나오고
우당탕퉁탕 튀어나온다

다들 키 큰 집들이 있는 도시로 떠나고
너른 땅이 있는 나라로 이민 가는데
61 매
좁은 돌 절구통만 고집하는 촌놈 금붕어

그런데 나는 왜 토박이 금붕어가 좋을까
그 촌놈 금붕어가

62 매




칡넝쿨
63 매


보드란 칡넝쿨이
곰바위를 타고 내려옵니다.
작은 도랑을 건너
64 매
외갓집 마당에서 놉니다.

며칠째 지켜만 보던 외할아버지는
어린 칡넝쿨을 잘 타이른 뒤
감나무 뿌리를 움켜잡은 손
65 매
지게다리를 감은 팔을 풀어
왔던 길로 되돌려 보냅니다.

칡넝쿨은 돌아갈 생각이 없는지
도랑 건너서
66 매
외할아버지 집 비우는
장날만 기다립니다.



67 매





68 매
<시작노트>

마흔 들어 삶에 먹장구름이 드리워졌다. 한낮에 어둠길을 걷듯 망연했다. 삶이 나를 속
였다고 생각했다. 나를 속인 것은 나였다. 괴롭고 성난 마음이 몸을 허물었다. 세상일
에 미혹되지 않아야할 불혹의 삶이 심하게 요동쳤다. 맥이 풀렸다. 지친 심신을 헤집고
69 매
降神이라도 한 듯 꼬마둥이 童子神이 몸 안에 들앉아버렸다. 마음속 당집에 향을 피운
듯 몸과 마음이 편안했다. 동심이 깃든 마음이 자연스레 실타래를 풀어냈다. 동시였다.

꿈과 현실을 완전분리하려는 어른들과는 달리 아이들은 꿈과 현실을 동일시하려는 성향
이 짙다. 그 사이에 견고한 벽이 자리한다. 벽을 허물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. 하지만 정
70 매
녕 동심의 세상에 눈을 뜬다면, 그리하여 아이의 눈으로 그들의 삶을 온전히 들여다볼
수 있는 마음의 눈을 가진다면 아이와 어른, 사람과 자연을 비롯한 세상의 온갖 벽을 허
물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.

공자가 志學했다는 열다섯에 처음으로 어설프게 시라는 것을 지어본 지 이십오 년의 세
71 매
월동안 시와 함께했던 생활이 마흔에 접어들어 변화를 시작했다. 변화와 혁신이 화두인
시대를 맞아 나 역시 우연찮게 시라는 고욤나무를 대목 삼아 동시라는 대봉감나무가지
를 접붙이게 된 것이다. 이제 겨우 돌감이 달리면 어떡하나? 하는 근심을 잠재운 정도
다. 접목한 나무에서 동자신에게 바칠 굵직한 대봉감이 주렁주렁 열리도록 해야겠다.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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