詩골

남명선생 신도비

방장산두류산 2019. 10. 4. 11:43

집 앞 남새에
이랑 고랑 일궈 고추 모종 심은 뒤
어깨에 괭이 걸머메고
길 옆 남명 선생 신도비각 앞에 탁발승처럼 서서
괭이로 문 톡토독 두드려보지만 공염불이다


단단히 빗장 지른
오백 년 전 올곧은 선비정신도
경敬과 의義 품어 안은 남명학도
쉽사리 문 열리지 않아
비문碑文에 눈 맞춘 채
도둑처럼 문빗장 뽑아 비각 안으로 드니
머구 고들빼기 씀바귀 떡쑥
안면 많은 중생들 맨 먼저 눈에 들고
쌀뜨배이꽃 발비들키 개금낭화 시청구도
돌담에 기대 키를 재고
뽀리뱅이 방가지똥 산괴불주머니도
비석을 둘러앉았다


닳은 세월 따라 비문도 닳고닳아
이목구비 또렷했을 옛 글자들
신도비 틈에 찡겨 사는
눈곱만한 별꽃의 마른 입술 적시어 주려
이 무더운 날 제 살 뜯으며 운다


대대로 이 고을 지켜낸
박새 멧새 촘촘한 울음도
지붕 없는 비각 위에 발을 친다