詩골

송화마을에 내리는 눈

방장산두류산 2019. 10. 4. 11:42

붉은 백열등 불빛이 밤의 집들을 감싸안는 송화마을 분홍색 눈발 날

린다 꽃다이 지지못한 채 이승 떠난 꽃들 이밤 죽어서 뜬 눈으로 돌

아와 눕고 있다 붉은 소나무 밑 등허리 휘움한 노인의 어깨 위에 솔

꽃가루 같은 눈이 쌓이고 고샅을 훑어 오는 바람이 그를 점점 작게

만든다 그의 충혈된 눈은 모과나무 가지 얽어놓은 과수집 문 앞에

서성인다 방 안 가득 그림자를 드리우며 누군가의 털옷을 짜는 아낙

의 코미늘과 노인의 거친 손이 시간을 낚는 동안 눈발은 굵어지고

노인은 한겨울에도 따스한 피가 도는 붉은 나무 옹이에서 아까 걸어


둔 모자를 훔쳐 잡는다 수르르르 한 때의 바람기가 느껴지는 송화마

을 내내 시간 뒤에 엎디어 있던 꾸불한 지팡이가 노인을 안내한다

노인이 사라지면 노인의 빈 자리를 지운 솔꽃가루들 밤새워 손톱에

피멍 들도록 과수댁 낡은 철대문을 쾅쾅쾅 두드릴 것이다