詩골
까막 고무신
방장산두류산
2019. 10. 2. 20:16
학교에서 내 구멍난 고무신이 다른 아이의 발을
끌고 떠나버린 날 나는 오후 내내 풀죽어 지냈다
나를 동네 밖으로 데려가 본 적이 없는 그
까막 고무신에 나는 오래 정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
함석지붕에서 빠져 나온 못들로부터 내 발을
보호해 주진 못했지만 난생 처음 잃어버린
그 구멍난 고무신을 생각하면 지금도
발바닥에 잠들어 있는 못의 흔적들이 가려워 온다
발바닥 곪을라 숯불에 달구어진 아버지의 간장
숟가락이 구멍난 발바닥을 지질 때마다 나는
한 생애를 이렇게 솟아 오른 못들을 피해
살아 가야 하는 건 아닌지 어린 생각에 두려웠고
그런 밤이면 여지 없이 악몽을 꾸었다
서른을 넘기고도 내 못생긴 발은 아직 제 몸에 맞는
신을 가져 본 적이 없다 늘 신이 발을 소유했을 뿐이다
오늘 나는 구두 한 켤레를 샀다
발 뒷굼치에 붙은 밴드를 긁으며 이 밤도
구두는 내 피곤을 실어 나르고 있다
엊그제는 시골집에서 아버지께서
상여를 매어 주고 얻어 오신
흰 고무신을 신고 둑길을 오래 오래 걸었다
어린시절 한 번도 신어본 적이 없는 하얀 고무신,
그 고무신이 어둠에 젖어
까막 고무신이 되어 가는 저녁답까지